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관세 정책을 단행했다.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국가의 제품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이와 별도로 수십 개 국가에 추가 관세도 매기겠다며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 행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가별 상호관세 리스트 [자료=백악관 제공]
이번 관세 정책에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까지 예외 없이 포함됐다. 한국은 25%, EU에는 20%, 일본은 24%의 추가 관세가 적용됐고, 중국은 기존 20% 관세에 34%가 추가되어 총 54% 관세압박을 받게 됐다.
이번 조치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섬부터, 경제력이 매우 취약한 최빈국들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과의 교역량이 큰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상호주의 관세’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기존에 발표된 FTA 비적용 품목에 대한 25% 관세는 그대로 적용된다.
전문가들마저 혼란스럽게 했던 상호관세 계산식은 이러하다.
각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얼마나 흑자를 내는지를 기준으로 관세를 매겼다. 해당 국가의 대미 무역흑자를 미국 수입액으로 나눈 뒤, 그 수치를 절반으로 줄여 관세율로 삼았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경우, 2024년 미국에 1,366억 달러 어치의 상품을 수출한 반면, 미국산 제품은 131억 달러만 수입했다. 그 결과 미국은 베트남과의 무역에서 1,235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235 ÷ 1,366 ≒ 0.90, 즉 90%, 여기서 절반으로 줄여 46%의 관세율이 결정된 것이다.
이 방식은 대부분의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됐으며, 실제로 그 나라들이 미국 제품에 고관세를 매긴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기준이 된 셈이다.
중국은 이번 조치를 “노골적인 압박”이라고 비판하며, 즉각적인 맞대응 조치를 예고했다. EU 역시 “세계 경제에 대한 중대한 타격”이라며, 자국 수출품에 부과된 20% 관세에 대한 보복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미 교역량이 가장 큰 캐나다와 멕시코의 반응은 엇갈렸다. 캐나다 총리는 “국제 통상 질서를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경우 즉각적인 보복 관세 부과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관세 조치로 한국은 이중 위기를 직면하며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은 국가 리더쉽 부재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한미 FTA로 사실상 제로였던 관세가 25%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한국 정부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박상인 교수는 현재 전례 없는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인용할 경우, 대선 국면에 들어서게 되고, 관세 문제에 대응하는 데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인도, 블룸버그, EU 등 ‘덩치 큰 나라’에 매겨진 실제 관세는 반 밑으로 책정됐다. 이 점을 짚으며 박상인 교수는 이번 관세가 “미국과의 교역 의존도가 높고, 강하게 보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국가들에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즉 ‘강약약강’이었다는 것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전년도보다 10.4% 증가한 1278억 달러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는 557억 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 교수는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커졌습니다. 이제는 중국 및 동북아 국가들뿐 아니라 아세안, 호주, EU와의 무역을 확대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라며, 한국 정부의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한 강력 대응, 역내 협력 강화, 무역 파트너 다변화 추진을 강조했다.
한편 상호관세 발표 후 미국의 시간외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아시아 증시도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CNN에 따르면 주요 경제학자들은 이번 관세 정책이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