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담하는 모습. (사진=신화통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아시아의 두 거대 라이벌인 인도와 중국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다.
피를 부른 국경 분쟁과 뿌리 깊은 불신, 아시아 패권 경쟁으로 얽혀 원래라면 손잡을 이유가 없는 두 나라. 그랬던 인도와 중국을 트럼프 관세 압박이 ‘a marriage of convenience’, 즉 정략결혼의 장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도산 제품에 기본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관세율을 최대 50%까지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지난 수년간 중국을 상대로 취해온 전략과 유사하며, 결과적으로 뉴델리와 베이징 사이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인도와 중국은 이미 부분적으로 관계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동한 뒤, 양국은 직항편 재개, 티베트 순례지 2곳 개방, 관광 비자 발급 재개 등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 압박이 맞물리며, 양국이 전략적 접근을 더 시도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인도와 중국이 다음 달부터 여객기 직항편 운항 재개를 추진 중이다.
협상 관계자들은 인도 정부가 자국 항공사들에 중국 노선 재개 준비를 서두르라고 요청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달 말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직항편 재개를 공식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모디 총리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은 7년 만의 중국 방문이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모든 당사자의 공동 노력으로 회의가 연대와 우정, 결실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며 환영 메시지를 전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번 접근을 ‘신념에 기반한 동맹’이 아닌 ‘필요에 의한 협력’으로 보고있다. 히말라야 국경 충돌, 파키스탄 문제, 아시아 내 세력 확장 경쟁은 여전히 깊은 불신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파르와 아메르 국장은 “강경한 미국을 맞이하며 인도-중국 관계가 다소 완화될 수 있다.”면서도 “뉴델리가 워싱턴과의 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미·인도 관계는 냉전 시기의 거리감에서 벗어나 21세기 핵심 동반자로 발전해 왔다. 2014년 모디 총리 집권 이후 트럼프 1기에서 개인적 친분이 더해지며 관계는 정점에 이르렀다. 모디는 2019년 휴스턴 대규모 집회에서 트럼프 재선 캠페인을 공개 지원하기도 했다.
2020년 국경 유혈 사태 이후 인도-중국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국은 인도를 중국 견제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인도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이어졌고, 인권 후퇴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디 정부에 대한 우호 기조가 유지됐다.
하지만 트럼프 재선 이후 기조는 급변했다. 그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으며 인도 경제를 “죽었다”고 표현했고, 최고 수준의 관세율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인도는 원유 수입의 36%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급성장하는 경제와 14억 인구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밀란 바이쉬나브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국장은 “이번 조치는 미·인도 관계를 냉전 시절의 소원한 시대로 되돌릴 위험이 있다”며, “하루아침에 깨지진 않겠지만 인도 측에 큰 신뢰 격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인도를 ‘관세 왕’이라고 비난해왔지만, 인도 정부는 미국 주요 수출품인 석탄·의약품·항공기 부품·기계류 등에 대해서는 “관세가 거의 없거나 매우 낮다”고 반박했다. 다만 농산물 등 일부 품목에는 높은 관세가 있다.
하르쉬 판트 오브저버리서치재단 부소장은 “트럼프의 공개 압박이 모디 정부의 외교적 여지를 줄이고 있다”며, 인도 내 대미 여론이 경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디 총리는 최근 행사에서 “농민과 어민, 낙농업자의 이익을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며 맞섰다.
전문가들은 인도와 중국이 경제적 필요에 따라 접점을 찾고 있지만, 전략적 경쟁은 여전히 병행될 것으로 본다. 바이쉬나브 국장은 “앞으로 양국은 경제 협력과 전략 경쟁이 공존하는 이중 구조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인도 2차 관세는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의도지만, 역으로 인도를 러시아·중국 쪽으로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며 “미국이 피하려 했던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