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업무 중 신호를 위반하다 차량과 충돌해 사망한 배달기사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며 유족에게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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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 부장판사)는 배달기사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2024구합61490)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사망 당시 25세)는 2023년 9월 12일, 인천의 한 교차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해 음식을 픽업하러 이동하던 중, 좌회전 신호가 들어온 상태에서 직진하다 좌회전하던 차량과 충돌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비장파열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로 이틀 뒤 사망했다.
당시 A씨는 하루 30건이 넘는 배달을 소화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은 업무 중 발생한 사고라며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일방적인 신호위반으로 인한 중과실 사고”라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A씨 부모는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신호위반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인 점은 인정되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 특성상 배달 지연 등으로 인한 고객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음식을 배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A씨는 사고 당일 32회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고, 시간당 평균 적어도 4회 이상의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고 당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고, 이에 순간적인 집중력 또는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신호위반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A씨의 신호위반이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정만을 들어 이 사건 사고가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