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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고려후기 조성된 ‘탑 위에 탑’ ...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국보됐다
편집인
2025-01-13 10: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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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에 탑’을 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의 충남 공주 마곡사의 탑이 국보가 됐다.
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된 이후 약 41년 만의 국보 승격이다.
충남 공주 태화산 동쪽 자락의 마곡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등재된 사찰 가운데 한 곳이자 70여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창건과 관련한 특이한 것은 기록상 640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신라승려 자장 율사(590~658년)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하는데, 당시 공주는 백제(660년에 멸망)가 통치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640년에 백제 승려가 창건했으나 멸망 후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중창한 것을 640년에 지었다고 와전됐거나, 고승인 자장율사가 백제에 방문했을 때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지원으로 창건됐을 수 있다.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했으나 또 다시 임진왜란과 1782년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기도 했다.
마곡사 경내 한쪽에는 김구 선생이 한때 마곡사 백련암(白蓮庵)에 원종(圓宗)스님으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는 백범당이 있다.
1896년 김구선생은 청년 시절 을미사변과 연관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살해(치하포사건)해 인천 옥사에 갇혔다가 1898년 3월에 탈옥해 도피 생활 중 마곡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은당이라는 승려를 은사 삼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했고 승려로 몇 달을 지냈다.
현재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마곡사의 명물인 마곡천과 징검다리를 굽어 볼 수 있으며, 백범 명상길이 세가지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앞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석탑은 오층의 몸체를 올린 뒤 ‘풍마동’(風磨銅)이라 불리는 길이 1.8m의 금동보탑을 올려 ‘탑 위의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을 갖췄다.
마곡사 풍마동
특히 금동보탑은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양식을 재현하고 있고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기술적·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56년 5월 28일 풍마동을 도난당했다. 풍마동이 도난당한지 100일 만인 1956년 9월 7일 풍마동이 발견되었다.
마곡사 경내에 거주하며 여관업을 하는 김영옥이라는 사람이 집근처의 잡초를 제거하던 중 화장실 근처에 은닉된 일부 파손된 풍마동을 발견했다.
이는 처음부터 절취하려던 것이 아니라 사찰내의 대처승과 비구승 간의 분쟁에서 발생한 소행으로 추측을 했으나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도난당하여 회수하였던 풍마동을 1957년 9월 4일 새벽에 또 다시 도난당했다.
1958년 1월 13일 강원도 경찰이 절도범 김 모를 검거하고, 공범을 수배했다. 1월 18일에 일당 2명을 검거하고 경기도 가평읍 내리에 숨겨둔 풍마동을 찾아냈다.
이들 범행 동기를 보면, 김 모 등 3명은 서울형무소에서 만난 사이로 출옥 후 풍마동이 금, 은, 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공모하여 절취했다고 한다.
지대석에 새겨진 해목형 안상. /국가유산청 제공
석탑 맨 아래에 하중을 지탱할 힘을 높이기 위해 놓은 지대석에는 게의 눈과 같은 형상의 곡선 모양을 일컫는 ‘해목형 안상’(蟹目形 眼象)이 새겨져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석탑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다.
마곡사 석탑이 조성된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고려 후기 충청과 호남 지역에서 성행했던 백제계 석탑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탑에 새겨진 조각의 기법·문양 등을 고려하면 14세기 무렵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설명에 따르면 임진왜란을 거치며 탑 안의 보물은 거의 도난당했으나, 1972년 탑을 해체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향로와 문고리 등이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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