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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임신중 타이레놀 자폐 위험↑'...의학계, '근거부족' 반론

관리자 2025-09-30 11:21:42


지난 월요일 백악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CNN뉴스 캡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월요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신 중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이 자폐의 위험을 매우 높인다"며 임산부의 타이레놀 복용 제한을 강력히 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의사들에게 임신 중 타이레놀 사용이 “자폐의 매우 높은 위험과 연관될 수 있다”고 알릴 것이라 전했다. 그러면서 발열 치료와 같은 경우에는 “만약 참아낼 수 없다면” 사용하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자폐에는 여러 원인이 있으며, 타이레놀과의 연관성은 확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열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태아와 임신부 모두에게 유산, 선천성 기형, 고혈압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한국에 판매중인 타이레놀. (사진=김윤아 기자)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임산부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을 사용한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부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한 일반의약품으로 평가된다. 반면 이부프로펜이나 아스피린 등 진통제는 심각한 합병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FDA 국장 마티 마카리, 국립보건원장 제이 바타차리아,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국 국장 메흐메트 오즈 박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자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케네디 장관에게 “자폐를 (나와 함께) 미국 정치의 전면으로 가져왔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케네디는 오랫동안 반(反)백신 활동을 해왔으며,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반박된 이론을 제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한 많은 이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발언을 타이레놀에 국한하지 않고, 소아 백신 접종을 나누어 실시하거나 신생아 대상 B형 간염 백신을 12세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그는 “아기에게 너무 많은 액체,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으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광범위한 연구에서는 백신과 자폐 사이에 연관성이 없음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케네디와 FDA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완화된 어조였다. 케네디는 미국 보건복지부 HHS가 임신 중 타이레놀 사용에 관한 공익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며, 발열·통증 치료 시 “최소 유효 용량, 최단 기간” 원칙을 따르도록 의사들에게 권고한다고 밝혔다.

FDA는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의 안전성 라벨 변경을 추진하고 의사들에게 서한을 발송한다고 밝혔다. 해당 서한에는 “복용 여부는 부모에게 달려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FDA는 일부 연구에서 연관성이 보고되었으나 “인과관계는 확립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타이레놀 제조사 켄뷰(Kenvue)는 성명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주장에 강력히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는 임신부와 부모들에게 혼란과 위험을 야기한다”고 밝혔다. 또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전 기간 동안 필요한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진통제”라고 덧붙였다.

타이레놀과 자폐 사이에 연관성은명확한 관련성은 확정되지 않았다. 2024년 스웨덴에서 2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JAMA 연구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ADHD, 기타 신경발달장애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해 발표된 BMC Environmental Health의 메타분석은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 사이에 “연관성의 강한 증거”가 있다고 결론내렸지만, 인과관계는 증명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최소 용량, 최단 기간” 원칙을 의료 지도 아래 따를 것을 권고했다.

자폐과학재단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위험하다고 규정했다. 앨리슨 싱어 회장은 성명에서 “새로운 데이터나 연구 발표 없이 대통령이 개인적 생각만 제시했다”며 "이는 엄마들이 자폐의 원인으로 비난받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통증이나 발열을 참지 못하면 아이가 자폐에 걸린 게 엄마 탓이라는 것"이라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 회장 스티븐 J. 플라이쉬만은 성명에서 “오늘 발표는 과학적 증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무책임한 내용”이라며 “연방 보건 기관들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없이 수백만 명의 건강과 복지를 좌우할 수 있는 발표를 하는 것은 매우 불안하다.”고 밝혔다.

FDA는 같은 날 류코보린(leucovorin)을 소아 자폐 치료제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FDA가 인정한 최초의 자폐 치료제다. 류코보린은 항암 치료 보조제로 쓰이던 고용량 칼슘 폴리닉산으로, 뇌척수액 내 엽산 결핍(CFD) 치료에도 사용돼 왔다.

FDA는 또한 GSK의 브랜드 제제 웰코보린(Wellcovorin) 재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GSK는 라벨 업데이트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연구는 낮은 뇌 엽산 수치와 자폐 간의 잠재적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더 많은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신체는 새로운 적혈구를 만들기 위해 엽산이 필요하며, 임신 중에는 태아 성장과 발달을 위해 필수적이다.

천연 엽산은 신체에 많이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합성 엽산이 쌀, 빵, 파스타 같은 식품에 첨가되거나 보충제로 섭취된다. CDC에 따르면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매일 400마이크로그램의 엽산을 복용해야 한다.

자폐 아동을 대상으로 한 류코보린 임상시험은 몇 건뿐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유망하다고 본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소아신경과 전문의 리처드 프라이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첫 연구(자폐 아동 93명 대상)에서 뇌로 엽산이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항체를 검사했을 때 약 4분의 3이 양성이었고, 이 중 약 3분의 1은 류코보린 복용 후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이 개선되는 등 최소한의 중간 정도 이득을 보았다고 말했다.

자폐 옹호자들은 이 항체가 자폐 증상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은 흥미롭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고 지적한다. 프라이 박사 역시 “자폐에는 만능 약도 일률적 해법도 없다"며 "자폐에 대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은 매우 복잡하며, 아이마다 접근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카리 FDA 국장은 “이번 행정부는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자주 아픈지에 대해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학은 작은 연구만 반복해 우리가 이미 알던 답을 내놓지만,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NIH 국장 제이 바타차리아 박사는 이날 생물학, 환경, 유전 등을 포함한 자폐 연구 프로젝트 13개를 지원하기 위해 5천만 달러 이상을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트럼프는 자폐를 '끔찍한 위기'라고 부르며, 수년에 걸쳐 증가하는 사례를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발전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자폐의 원인을 밝히는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고, 케네디 장관은 자신이 이끄는 모든 기관이 이 문제를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에 따르면 8세 아동의 자폐 진단 비율은 2015년 68명 중 1명에서 2020년 36명 중 1명, 2022년 31명 중 1명으로 늘었다. 2015년에는 68명 중 1명이었다.

이러한 증가 요인에는 2013년 정신의학계의 자폐 정의 확대, 증상 인식 및 진단 수용 증가가 포함된다. 또한 조기 개입이 아동의 장기적 증상과 기술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영유아 선별검사가 추진돼 왔다.

전문가들은 타이레놀을 비난하거나 단일 약물을 처방하는 것으로는 자폐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소아과학회 회장 수전 크레슬리는 성명에서 “자폐는 복잡하고 개인차가 크며, 단일 원인이나 단일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교육, 행동, 사회적 개입을 포함한 맞춤형 지원과 연방 연구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텍사스 아동병원 피터 호테즈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폐에는 최소 100개 이상의 유전자가 관련돼 있다”며 “단일 화학물질로 설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또 “각각의 자폐 유전자는 다른 형태의 자폐와 관련돼 있으며, 단일한 화학 물질로 그 수많은 유전자 중 일부라도 해결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CNN과 인터뷰한 자폐 전문 단체 미국소아과학회, 마치 오브 다임즈, EveryCure, 미국산부인과학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발표에 대해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아의학회 크레슬리 회장은 “오늘 백악관의 자폐 관련 행사는 위험한 주장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들로 가득 차 부모와 예비 부모들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주었고 자폐 아동들에게 해가 되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학회 임상지침위원회 부위원장 베로니카 길리스피-벨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발표는 의사들마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뜨린다. 우리의 전문 학회와 과학은 타이레놀이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FDA가 다른 말을 하면 우리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고 말했다.

소아감염 전문가 폴 오핏 박사는 여성에게 열을 “참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특히 임신 1기 고열 시 아이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NYU 의대 메디컬 윤리학부의 아서 캐플런 박사는 CNN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발표를 “증거 부족, 낡은 신화의 재활용, 엉터리 조언, 노골적인 거짓, 위험한 조언이 권위를 주장하는 인물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칭하며 “이번 발언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잘못되었고, 임신 관리와 태아 보호에 있어 명백히 의료적 과실에 해당한다”고 적었다.